요괴 일화

신기한 도깨비 이야기

고삼이 2021. 3. 26. 08:32

출처: 짱공유


무속인이셨던, 저희 외할머니께서 생전에 이야기해주신 것 중에 유독 시골에선 귀신보다 도깨비들 더 많이 만나고 또 그런일이 매우 비일비재 했다고 하시더군요.

어머니도 어렸을 적에 자주 이야기를 듣고, 또 보시기까지 하셨다고 하니 그 중에 제 기억에 있는 몇 가지를 꺼내볼까 합니다.



외할머니께서는 하시고 계신 일때문에 따로 사셨고(무속인이셨으니까요), 어머니와 외할아버지(그러니까 엄니와 엄니 아버지), 두분이 함께 사셨다네요.


그 때 당시, 어머니 집이 그 동네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부잣집이셨대요.

그런데, 외할아버지, 즉 어머니의 아버지께서 도깨비의 도움을 받아서 그렇게 됐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하십니다.



한 번은 이런일이 있었다네요.

그 해 여름에 대가뭄이 들어 마을의 논이란 논은 죄다 쩍쩍 갈라져서, 가을추수 때 어떡하나 마을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그 소리를 하며 한숨만 푹푹 쉬셨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외할아버지께서 밤에 논길을 걸으시는데, 갑자기 어디서 말소리가 들리더랍니다.


- 이생... 이생... (무슨무슨 생원... 선비보고 생원 하잖습니까? 그때가 50~60년)


근데 그때 당시만 해도 도깨비 이야기가 주변에서 자주 들리던 시절인데다가 사람이 먼저 도발한다던지 쌍욕이라던가 하지 않는 이상 도깨비가 먼저 해코지를 한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봤기에 침착하게 대답하셨다네요.


" 누구요 ? "

- 이생. 배고파서 그런데 먹을 것 좀 주. 배고프니까 먹을것 좀 주.


그러더랍니다.


" 내가 지금 가진게 없는데 뭘 주면 자시것소? "

- 나 혼자 먹을게 아니니, 생콩을 삶아주시오.


하더랍니다.



그래서 그 길로 집에 들어가자마자, 하인들 깨워서 콩으로 한됫박 삶아서 부랴부랴 다시 어두컴컴한 논길로 가셨다네요.

그리고 허공에다가, " 자, 여기 삶은 콩 가져왔으니, 주린 배부터 얼른 채우시구려. "

그랬더니, 그 캄캄한 논 한복판에 모습은 보이지 않고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스치는 소리가 나면서, 바람이 이리저리 불더랍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사납게 불던 바람도 잠잠해지고 아무소리도 나지 않길래 슬쩍 삶은 콩이 들어있던 됫박을 들어서 안을 들여다 봤는데, 정작 배고프다고 하더니만 콩이 그대로 있더랍니다.


뭐지? 뭐지? 하시면서, 그걸 들고 집에 다시 오셨는데, 콩을 받아든 하인들이 헉하고 놀라더랍니다.
그래서 그 됫박을 들여다보니까 글쎄


콩의 눈.. 다들 아시죠? 씨앗에서 발아해서 줄기 나오고 하는 그 부분. 그 눈만 전부 없더랍니다.

그리고는 며칠뒤에 또 밤에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오시는 외할아버지께, 어둠속에서 또 말을 건네더랍니다.


- 이생~ 이생~ 고마우이


외할아버지께선 담에 또 배고프면 말씀하시게 하고선 가려던 찰나에, 도깨비가 말을 또 걸더랍니다. 근데 이번엔 한 목소리가 아니라 여러 목소리가 돌림노래 하듯 말을 하더랍니다.


- 이생 논에 물 대줄까?
- 가뭄때문에 힘들지? 이생~
- 이생, 도와줄까?


외할아버지께선 속으로 허, 도깨비가 은혜도 갚는구나 싶어 밑져야 보전이니 그러라 하셨답니다.

그리곤 도깨비가 논이 어디쯤이냐고 묻고, 저어기 부터 저어기까지가 내 논이다 알려주셨답니다.

그리곤 집으로 오셔서 주무셨는데 아침에 논에 나가보니, 정말로

외할아버지 논에만 어디서 물이 왔는지, 물이 가득 차 있더랍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말라서 시들기 직전이었던 벼들도 쌩쌩했구요. 옆 논은 그대로 말라 비틀어져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신기한게, 그 다음해도, 또 그 다음해에도, 외할아버지 논은 가뭄이던 풍년이던 간에 항상 물이 차있고 풍년일땐 쌀도 매우 우수해서, 장에 내다놓으면 사람들이 두 배, 세 배 값을 주고 사가곤 했답니다.



또 신기한게 외할아버지께선 그 일 이후로 도깨비들과 생활담소를 나눌 만큼 친해지셨다고 합니다.

새벽에 첫닭이 울기 직전에 마당에 뭐가 쿵 하고 소리가 나서 놀란 하인들이 깨서 나가보면, 노루가 한 마리 던져져 있을 때도 있고, 가물치나 메기도 두 세 마리가 줄에 꿰여져 마당에 퍼드덕거리고 있었다나 하여튼 그런게 가끔씩 마당에 누가 던지고 가더랍니다.

당연히 도깨비들이었겠죠.

만나러 가실땐 항상 혼자서 나가셨다네요. 그러고는 해주시는 이야기가 도깨비들은 사람 여럿앞에 모습을 드러내길 싫어한답니다. 은원이 확실하고 친구처럼 지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하시네요.

번화가 좋아하고 도시에도 바글바글한 귀신과는 달리 도깨비는 인공적인 불빛이 적은 곳, 공기가 좋은 곳에만 있다고 합니다